영국, 미국, 이탈리아, 일본, 러시아에서 온 넬, 숀, 피에트로, 치에, 안톤, 로만 등 우주비행사 6명이 등장한다. 특별한 주인공 없이 각자의 이야기가 우주 생활과 맞물려 소개된다. 우주비행사들은 “사용한 포크는들 자석으로 테이블에 붙여”두고 생활한다. 우주정거장은 지구 중력의 100만분의 1 정도로 무중력 상태에 가까운 상태라 물건들이 떠다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이 우주에서 경험하는 새로운 감각을 묘사한 부분이 눈에 띈다. 이들은 스물네 시간 동안 열여섯 번의 일출과 열여섯 번의 일몰을 마주한다. “동유럽을 지나쳐 러시아에 들어서고 몽골을 지나 그 아래 중국으로 내려간다. 이 모든 게 20분 만에” 일어난다. 우주를 다룬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볼 때 느끼는 고요하면서도 붕 뜨는 감각이 책을 읽을 때도 비슷하게 느껴진다.
그들의 고통도 그려진다. 치에는 우주정거장 생활 도중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까지 세상을 떠나며 그는 연결된 곳 없다는 고립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렇기에 “이제 치에가 자신에게 생명을 준 존재로 가리킬 수 있는 것은 저 구체뿐이다. 저게 없으면 생명도 없다. 저 행성이 아니면 생명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수천년 동안 특이점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온 인류의 대장정은 이제 전력 질주 구간에 이르렀다. 그 책이 먼 지평선을 언뜻 보여주는 것이었다면, 이 책은 그곳에 도달하는 마지막 수킬로미터 구간을 보여준다.”
읽진 않았어도 제목은 들어봤을 법한 책 중 하나가 2005년 출간된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이다. 그 책에선 “2029년 인간 두뇌에 필적하는 인공지능(AI)이 개발되고, 2040년 중반에는 인간 지능의 수십억 배에 달하는 AI가 나타난다”고 당시로선 ‘급진적’ 주장을 했다. 하지만 2022년 오픈AI의 챗GPT 등장 이후 급격한 AI 기술 발전으로 수년 내 인간과 비슷한 수준의 ‘범용인공지능(AGI)’에 도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커즈와일이 예측한 ‘특이점(Singularity)’의 시대가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특이점이란 기술의 발전 속도가 매우 빠르고 그 영향이 깊어,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변화된 새로운 문명이 도래하는 순간을 뜻한다. 신간 <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는 특이점을 향한 진전이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 안내한다.
커즈와일은 2029년까지 more info AI가 사람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의 능력을 가졌는지 알아보는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면 ‘인류가 AI와 결합하는’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AI가 우리의 뇌와 긴밀하게 통합되어 인간이 생물학적 한계를 벗어나게 된다는 얘기다. 노동과 산업, 부와 권력, 복지와 안보, 삶과 죽음 더 나아가 인류의 존재 방식까지 다양한 통찰들이 흥미롭다.
저자가 제시하는 미래상이 기술에 대한 긍정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책의 마지막에서 ‘위험’을 다루지만, “조심스럽게 낙관적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AI의 가속화에 따라 위기는 존재할 것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 역시 급격히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AI 시대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각종 질문과 생각거리를 던질 수 있는 책이다.
인간은 “지구에 있을 때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 행성이 아닌 다른 곳에 천국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지구를 떠나온 우주비행사들은 “지구가 없으면 우리 모두 끝장”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지구는 생명의 근원이며 인류의 영원한 집이다.
지구의 정치 분쟁 영향으로 유럽 국가와 러시아 우주비행사들이 서로 각자 국적의 화장실만 이용해야 한다는 지시가 들어온다. 아무도 명령을 듣지 않는다. “화장실이 대체 뭔 상관인데? … 우리는 하나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이곳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재사용하고 공유한다. 우리는 갈라질 수 없다는 것. 이것이 진실이다.”
우주엔 경계가 없지만, 지구엔 있다. 멀리서 바라본 우주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전히 “전쟁이 끊이질 않고 사람들이 국경을 지키느라 죽이고 죽어”나가는 일이 반복된다. “물이 말라붙어 계속 분홍색으로 보이는 호수들, 한때 열대우림이었던 그란차코로 침투하는 소 목장, 소금물에서 리튬을 채굴하는 증발못이 늘어나면서 나날이 퍼지고 있는 푸른 기하학무늬들”처럼 처음 아름답게만 보이던 지구의 자연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것은 욕망의 정치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대서양에서 아찔한 네온색 또는 붉은색 조류가 대발생하는 현상은 대부분 정치와 인간의 선택으로 만들어졌다. … 성장하고 획득하는 정치,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한 10억가지의 외삽적 추론, 지구를 내려다보면 그게 보이기 시작한다.”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려는 인간의 호기심은 기술의 진보를 불러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진보의 결과가 인류를 절멸시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퍼지는 시대다. 소설은 지구 위의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묻는다.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공룡, 경계해야 하는 존재들인지도 모른다.”
지난해 부커상 수상작이다. 작가는 수상 소감에서 “이 상을 다른 인간과 다른 생명체의 존엄성을 옹호하거나 반대하지 않는 모든 사람에게 바친다”고 했다.